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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따스한 불의 냉정함

←분당소방서 예방과 임상기 화재조사관

찬바람에 쓸려 차갑게 굳은 대지를 따스하게 감싸기 위하여 나뭇가지의 입들이 땅위로 떨어지고 사람들도 저마다 온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겹겹이 옷을 포개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겨울이 왔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사람들은 저마다 불의 따스함을 나누기 위하여 불과 잦은 만남을 시도하며 불이 주는 따스함을 느끼지만,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불의 냉정함과 사나움과도 마주치게 된다.

며칠 전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초저녁도 아닌 깊은 밤에 발생한 ‘아파트화재’ 불길한 생각과 별것 아닐 것 이라는 기대를 머릿속에 그리며 현장에 출동했다.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니 강 건너 불구경하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한 아주머니와 여학생이 눈에 띤다. 경험적으로 화재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진정시키며 필요한 답변을 얻기 위하여 이야기를 한다.

화재조사관으로 꼭해야할 일이지만 이런 경우 정말 난처할 때가 정말 많다. 자기 집이나 점포가 평생 이룩한 삶의 터전이 훨훨 타고 있는데 평상시와 같이 편안한 대화가 가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계속해서 그들을 진정시키며 필요한 답변을 얻어낸다. 다행히 화재발생 직 후 밖으로 빠져나와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삶의 터전에서 함께하며 정들었던 살림살이는 물론 사진첩과 같은 추억의 물품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 돈으로 매워지지 않을 피해가 발생하였다.

인류에게 불은 참 고마운 것이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는 참 무섭고 냉정한 놈이다. 우리가 방심하는 짧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화재조사관으로 수많은 화재를 경험하며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평소에 조금만 더 주의하고 조심했다면 그 슬픔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슬픔의 정도도 훨씬 작았을 터인데 하고 말이다.

소방서에서 화재예방을 위하여 많은 홍보를 하지만 화재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물론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각종 에너지를 사용하는 현대사회에서 화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화재예방 못지않게 화재발생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다음 사항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부주의에 의한 화재는 우리가 조금만 주의하고 행동하면 예방할 수 있다. 음식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점화 후 외출하거나, 불씨가 남아있는 담배꽁초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연물 주변에 버리는 것. 특히 뚜껑이 없는 용기에 빨래를 삶거나 식용유를 이용하여 음식조리 중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빨래가 용기 밖으로 넘쳐 가스레인지 불꽃에 닿거나 식용유가 과열되어 불이 방생 상부 후드 및 인접해 있는 고무가스배관에 불꽃이 옮겨 붙으면 가스배관을 통해 분출되는 가스와 함께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다.

각 가정의 금속가스배관 말단에 부착된 중간밸브는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만 개방해야 한다. 개방된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고무가스배관으로 불이 옮겨 붙으면 모든 것을 앗아간다.

또한 구획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자신의 대피를 위하여 출입문을 등지고 소화기를 이용하여 소화활동을 하고 소화가 여의치 않으면 열려있는 출입문을 반드시 닫고 대피해야 한다. 목재재질의 문이라도 단 몇 분은 불길과 연기를 막아주고 그러는 사이 소방대가 도착하면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황없이 출입문을 활짝 열고 나오면 밀려들어오는 공기를 통해 불은 순식간에 확대되고 출입문을 통하여 분출된 검은 연기는 모든 살림살이를 쓸모없게 만든다.

누구나 이해가 가는 사항이지만 평소 머릿속에 그려놓고 주의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을 위하여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건강을 돌보며 교통사고 및 안전사고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만, 상대적으로 발생 확률이 적은 화재에 대하여는 그다지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건강과 사고는 일정부분 회복이 가능하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화재로 모든 것이 타버리면 그로인한 피해는 엄청나며 회복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 따스한 불의 냉정함을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시켜 화재로부터 나의 소중한 가정의 추억과 행복을 지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