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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환자의 길고 외로운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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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4-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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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환자의 길고 외로운 투병

5594.jpg←분당소방서 서현119안전센터 소방사 오혜석

나는 생과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긴박한 현장에서 항상 극도의 긴장 속에서 근무하는 119 구급대원이다.

어쩌다 근무를 끝내고 잠시의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전화벨 소리, 자동차 소리, 옆집아이 장난감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벌떡 선잠 깨기를 여러 번...

결국 잠시의 휴식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119 소방대원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도 일종의 직업병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어쩌다가 119 구급대원의 활약상이 언론매체에 집중적으로 공개되는 때가 있다. 뭔가 색다른 사건사고의 경우 각종 언론은 앞을 다투어 보도를 하게 되는데, 몇 년 전에는 전기에 감전된 환자가 영안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극적으로 소생한 했던 일이 있었고, 물놀이 사고로 거의 죽음 직전에서 살려낸 이야기 등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같은 119 대원으로서는 동료의 헌신적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구급대원으로서의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비단 그렇게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긴박한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119 소방대원이 활동하는 민생의 현장에는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으면서 소생하는 생명에 대한 축하와 박수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쓸쓸하고 외로운 생명이 너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상황실로부터 출동지령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폐암 말기 환자로 수십 년을 병상에서 지루한 투병을 생활을 하였다는 할머니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온 집안은 환자가 토해낸 각종 오물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고 환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가운데도 가족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우리는 환자의 기도가 확보되었는지 확인하고 고농도의 산소를 투여하고 환자의 심전도 등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하며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환자의 기도가 오랜 병치레로 인해 많이 부어 있고 헐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침습적인 처치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치는 고농도의 산소를 투여하며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 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병원에서 의료진에 환자를 겨우 인계하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한 동안 일어날 힘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구급차는 환자가 쏟아낸 분비물로 어지럽혀 있음을 한 동안 알지 못하였다.

그 환자는 겨우 의식을 회복하여 고비를 넘긴 상태이며 일단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이제 그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정밀진단을 받을 것이고 특수 의약품으로 통한 치료가 한 동안 진행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적지 않은 진료비 청구서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투병생활이 또 시작될 것이고 그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가족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119 구급대원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칭찬을 듣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에 개운치 않은 체증을 안은 채로 또 다른 응급환자를 찾아 지금도 거리를 누비고 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갑작스런 상황에서 소생한 기적 같은 생명들이 모두의 축하와 격려 속에 주목 받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순간의 기쁨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나긴 투병생활을 하며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외로운 이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가 가치 있는 일이며 모든 이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임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서해상에서 순국한 해군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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